
어제도 퇴근길에 차 안에서 비를 맞았다. 와이퍼가 리듬 없이 흔들리고, 신호 대기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그때 습관처럼 라디오 주파수를 돌렸다. 요즘은 음악 앱이 훨씬 편한데도, 이상하게 비 오는 날에는 라디오 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음질이 조금 거칠어도, 멘트가 매끄럽지 않아도 그게 오히려 상황에 잘 어울린다.
기자로 일하면서 하루 종일 사람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뷰 녹취, 전화 통화, 브리핑, 회의. 그런데 업무용 목소리와 라디오 속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다. 목적이 없는 말, 정리되지 않은 사연, 중간에 끼어드는 웃음 같은 것들이 묘하게 마음을 풀어준다. 특히 심야 시간대 라디오는 더 그렇다. 누가 듣고 있는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톤,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신청곡, DJ가 갑자기 자기 얘기를 꺼내는 순간들.
몇 달 전, 취재 때문에 지방을 자주 오가던 시기가 있었다. 고속도로를 하루에 두세 번씩 타다 보니 음악 리스트가 바닥났다. 그때부터 라디오를 다시 틀기 시작했다. 최신 가요도 나오지만, 이름 모를 인디 음악이나 10년쯤 지난 팝송이 나올 때가 더 반갑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지금 기분이랑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우연이 요즘엔 꽤 귀하다.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은 점점 효율적으로 바뀌는데, 라디오는 여전히 비효율적이다. 듣고 싶은 곡을 바로 고를 수도 없고, 광고도 많고, 가끔은 DJ 멘트가 길다. 그런데 그 불편함 덕분에 생각이 끼어든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왜 이 노래에서 갑자기 예전 사람이 떠올랐는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
보아비스타 FM이라는 이름도 그런 순간에서 나왔다. “좋은 풍경”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거창한 장면은 아니다. 퇴근길 차 안, 불 꺼진 방, 늦은 밤 편의점 앞 벤치 같은 곳. 음악이 배경처럼 깔리고, 이야기는 흘러가듯 지나가는 시간. 이 사이트에는 그런 장면들을 중심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 목소리에 얽힌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언젠가 라디오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볼륨을 조금 더 올릴 거라고 믿는다. 비 오는 밤에는 특히.
나현우 기자